5년 전 취임식도 없이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했듯 소리 없이 나가려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며 마련한 퇴임식이었다.
15일 퇴임식이 열리는 더불어락노인복지관 대강당에는 발 디딜 곳 없었다. 칠순을 넘긴 어른들도 의자가 부족해 서야 했지만 불편한 기색은 없었다. 새로운 길을 가는 젊은 관장을 위해 복지관 어르신들이 직접 준비한 행사였기 때문이다.
복지관 어르신들의 아쉬움은 송별사를 한 오상채 자치회장의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에서 진하게 묻어났다.
이날 퇴임식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사람을 떠나보내는 섭섭함 보다는 새로운 역사를 함께 만든 ‘동지’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실제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은 지난 5년 동안 우리 사회에 새로운 노인복지 모델을 제시해왔다.
복지관 1층 일부를 어르신들이 직접 북카페로 만들었다. ‘무엇을 할 테니 예산을 지원해달라’던 어르신들이 복지의 생산자로 우뚝 서는 전환점이었다.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어르신들은 복지관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쓰는 공동체 공간으로 개방한데 이어 2011년 8월에는 두부 판매, 팥죽가게, 북카페를 운영하는 더불어락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 주식회사는 후일 협동조합법 발효 이후 광주전남 1호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사회적 공헌과 함께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복지를 스스로 일군 것이다.
어르신들은 대동회를 꾸려 복지관 운영에도 나섰다. 대동회는 복지관 대소사를 토론과 투표로 결정하는 최고 결정기구다. 복지관 사무국은 대동회 의결 사항을 운영에 반영하고 있다.
지난 5년간 광산구 더불어락 노인복지관을 찾은 중앙부처, 지방자치단체, 복지 관련 기관은 모두 170여 곳, 3700여 명에 달한다. 또 광주지역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 ‘노인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한 이야기’로 수록돼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범 사례가 됐다.
강 관장은 퇴임식에서 “어르신들은 자치와 복지가 무엇인지 스스로 잘 알고 계셨다. 인생 70은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간다”며 “더불어락 복지관의 철학, 문화를 앞으로도 굳건히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강 관장은 “15년 뒤 5·18항쟁 50주년을 맞는 2030년에는 광주의 시민자치를 완성하는 일에 바탕이 되도록 헌신하겠다”며 “어르신들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길을 걸어가겠다”고 퇴임 이후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