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외국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도 국내 과세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33년간 유지돼 오던 기존 판례가 뒤집히며, 국세청은 향후 수십 조 원 규모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근 국세청과 미국 기업 간의 법적 분쟁에서 국세청의 손을 들어주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1992년 이후 유지돼 오던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는 과세 대상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정면으로 뒤엎은 것이다.
사건의 핵심은 국내 기업이 미국에만 특허 등록된 기술을 사용하고, 그 대가를 미국 기업에 지급한 경우 이를 국내원천소득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그간 법원은 특허의 속지주의 원칙, 즉 “특허는 등록된 국가에서만 보호된다”는 법리를 근거로 국내 미등록 특허에 대해선 과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법 판결은 ‘사용의 실질’에 주목했다. 국세청은 이미 2008년 법인세법 개정을 통해 “특허가 국내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국내 제조과정에 사용됐다면 과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 판결은 이와 같은 국세청의 주장을 전면 수용한 것으로, 이제 국내 제조 과정에 사용된 해외 특허는 국내 과세 대상에 포함된다.
이번 판결을 이끌어내기까지 국세청의 대응은 집요했다. 국세청은 본청과 지방청 합동으로 ‘미등록 특허 TF’를 구성해 장기간 소송을 준비했고, 국제조세와 지식재산권 전문가 등 외부 인력을 포함한 전문팀을 꾸려 대응 전략을 짰다.
심지어 1976년 작성된 조세조약 관련 입법자료까지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해 법원에 제출했다. 이 자료는 우리 국회가 “사용료는 대가를 지급하는 국가에서 과세한다”는 해석으로 한·미 조세조약을 비준했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또한 미국 역시 특허 등록 국가가 아닌 실제 사용 국가 기준으로 과세하고 있다는 증거도 확보해 제출하면서 국제적 정합성을 강화했다.
이번 판결은 단순한 소송 승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 국세청이 과세한 사용료 관련 세액 중 불복 중인 금액만 약 4조 원에 달하며, 이 판례가 유지되지 않았다면 모두 국외로 빠져나갈 세금이었다.
국세청은 앞으로도 우리 기업들이 외국 특허를 사용할 경우 국내 과세권을 적극 행사할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십 조 원 규모의 세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번 승소에 대해 “국세청의 저력을 보여준 사례”라며 “앞으로도 정당한 과세권을 끝까지 지켜 국부 유출을 방지하고, 국가 재원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