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 근무하는 5만 2천여 명의 유권자들이 다가오는 선거에서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대규모 사업장 내 사전투표소 부족과 현행 선거법의 한계, 그리고 사측의 미온적인 태도가 맞물리면서 '투표 대란'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평택을 지역구의 더불어민주당 이병진 의원실 등에 따르면, 평택 삼성 캠퍼스에는 임직원 약 1만 4천 명과 건설 및 협력업체 노동자 약 3만 8천 명을 합쳐 총 5만 2천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설 및 협력업체 노동자 3만 8천여 명은 정규직과 달리 '비근무' 신청을 통한 외출이 사실상 불가능해 평일 사전투표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연고지를 떠나 평택에서 생활하고 있어 주말 고향 투표도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60일 이내 선거로 투표일이 화요일로 잡히면서, 평일 근무 압박이 더욱 커져 투표권 보장이 더욱 어려워졌다.
이병진 의원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평택 선거관리위원회에 추가 투표소 설치 및 투표소 배치 인력 증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평택 선관위는 "전산 등록이 이미 완료돼 이번 선거에는 추가 투표소 설치가 어렵다"고 답변했다. 더 큰 문제는 현행 공직선거법 제148조가 읍·면·동별로 투표소를 1개만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대규모 사업장 인근에 추가 투표소를 마련하는 데 법적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평택 삼성 캠퍼스 인근에는 고덕동 사무소 단 한 곳의 투표소만이 존재한다. 이 의원에 따르면 고덕동에만 주민 5만 6천여 명과 삼성전자 6만여 명을 합쳐 약 10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가 밀집해 있다. 도보로 7분 거리라지만, 수많은 인원이 한 곳에 몰려 줄을 설 경우 30분 이상의 대기 시간이 예상돼, 사실상 평일 근무 중 투표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이에 이 의원은 삼성전자 측에 셔틀버스 운행과 근무 시간 조정 또는 유연근무제 적용 등 사측의 적극적인 배려를 촉구했다.
그러나 삼성전자 측은 "최대한 투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과 함께 "출근하기 전에 투표하고 오라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며, 근무 시간에는 사실상 어렵다"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방해 시 1천만 원의 과태료 규정이 있지만, 대기업에는 실질적인 압박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병진 의원은 "이러한 대규모 사업장의 투표권 보장 문제는 비단 평택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하이닉스 공장, 대규모 건설 현장 등에서도 유사하게 발생할 수 있다"며 당 차원의 전국적인 실태 확인과 기업들의 책임 있는 자세를 강력히 요구했다. 5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소중한 한 표가 '투표할 기회조차 없는'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선관위와 기업, 그리고 정치권의 신속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