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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기획 캘리그래피 특별전 "쓰지 않은 글씨"
  • 윤만형
  • 등록 2022-02-08 14: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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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기획, 본격 캘리그래피 전시!

그리고, 만들고, 새기고, 춤추는 캘리그래피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오는 2월 15일(화)부터 3월 13일(일)까지 <쓰지 않은 글씨>를 서울서예박물관 2층 실험전시실·현대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하고 (사)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가 후원하는 이번 전시는 ‘글씨’와 관련된 회화, 조각, 미디어 작품 110여 점을 선보인다.


<쓰지 않은 글씨>는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첫 대규모 캘리그래피전이다. 국내 유일의 서예전문 미술관인 서예박물관을 보유한 예술의전당은 주로 정통 서예 장르를 주축으로 그래피티, 문자도·책가도, 민화 등 다양한 인접 장르를 포섭하며 지평을 넓혀왔다. 예술의전당은 캘리그래피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를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본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쓰지 않은 글씨>는 필획으로 구성된 ‘물화(物化)’된 작품뿐만 아니라 글씨를 쓰는 행위와 마음가짐에도 관심을 갖는다. 글씨는 꼭 쓰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캘리그래피는 장르와 매체를 확장한다. 글씨를 쓰고, 만들고, 붙이고, 설치하며, 미디어로 가상의 공간을 창출한다. 이번 전시는 ‘서예는 순수미술 장르, 캘리그래피는 디자인 장르’라는 세간의 인식을 뛰어넘어 현대미술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주제에 따라 공간이 구획되어 있지 않다. 캘리그래피의 예술적 행위형식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쓰다, ▲만듦으로 쓰다, ▲새김으로 쓰다, ▲춤으로 쓰다 등으로 작품을 구분한 표식만 있을 뿐이다. 주제별로 공간을 나누고 동선을 짜서 관객에게 연출의도를 드러내는 일반적인 전시와 달리, <쓰지 않은 글씨>는 특별한 구획 없이 작품을 배치하여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술적 행위형식 중 ‘그림으로 쓰다’는 그리기로 일상의 말과 글을 표현한다. 새로운 상형문자로 행위나 사물을 기호화하고(김영배, 손창락, 박방영, 이재열), 글씨로 감정 상태를 활유(活喩)하며(김성태, 손동준, 오민준, 이승환, 이진경), 문자도(文字圖)나 언어유희를 채택한다(김진한, 이상현, 이수진, 조정욱, 조용연, 최일섭). 2021년 한글날, 옥스퍼드 사전에 새롭게 등재된 26개 한글 단어의 글씨를 강렬한 색감으로 선보이고(홍지윤), 코로나 백신박스를 오브제로 활용하여 오늘날 생명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황석봉). 새로운 도상(圖像)을 창출하는 캘리그래피는 디지털 시대의 이모티콘처럼 문자에서 의미로, 의미에서 감정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만듦으로 쓰다’는 그림의 경계를 벗어나 글씨를 만드는 것이다.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직접적인 형태인 글씨는 이 단계에 이르러서 오브제가 된다. 글씨가 담긴 의미는 제작 방식이나 소재에 담긴 의미와 뒤섞이면서 새로운 의미로 변화한다.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과 모션 캡처(motion capture) 기술을 이용하여 ‘보는 글씨’에서 ‘쓰는 글씨’로 확장하는 작품(이뿌리), 기성(ready-made) 글씨체(font)를 콜라주(collage)한 작품(이정화), 석고보드, PVC배관, 기왓장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글씨를 만들어낸 작품(이지은), 3D로 구현한 손글씨(김현중), 손글씨를 타이포그래피로 구현한 작품(안마노), 조각 글씨들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언어(이정), 한지로 빚어낸 글씨까지(여태명)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캘리그래피의 형식을 깨뜨린 시도가 눈길을 끈다. 


인간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그리기 대신 새기기를 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반구대암각화처럼 비언어를 새기거나, 팔만대장경처럼 언어를 새겨 찍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김으로 쓰다’ 작품으로 타투(오미자, 한시)와 전각(진공재, 정고암) 등을 선보인다.


‘춤으로 쓰다’의 주인공은 메시지를 매개로 글씨와 유비(類比)하는 춤이다. 춤은 비언어적인 표현예술이지만 행위로 말과 글을 대신할 수 있다. 미디어 설치 작가 이뿌리와 비보잉 그룹 구니스 컴퍼니는 글씨를 통해 희미한 공동체 정신을 일깨우고, 공연 창작단체 리퀴드 사운드는 연희와 무용을 통해 글쓰기의 에너지를 잇고 고정관념을 해체한다. 관람객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한 단체씩 격주마다 번갈아 펼치는 ‘춤으로 쓰는 글씨’를 만날 수 있다. 리퀴드 사운드의 공연은 2.19(토), 3.5(토), 이뿌리x구니스 컴퍼니의 공연은 2.26(토), 3.12(토)에 진행되며, 특히 이 날은 전시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렇듯 그리고, 만들고, 새기고, 추는 행위는 ‘쓰지 않은’(不筆) 행위이지만 이 모든 예술행위가 마음을 쓰는(用) 태도이다. 흑백의 먹과 화선지에 천착하지 않고 다채로운 색상과 다양한 형식으로 형상화한 작품들은 다원적 의미를 위트 있게 긍정한다. <쓰지 않은 글씨>는 캘리그래피가 글씨 형식에 국한하지 않고 현대인의 사의(寫意)를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점을 보여주려 하였다.

 


서예의 장르 확장과 대중화를 위해 마련돼


지금까지 예술의전당은 기획사업으로 시선의 외곽에 있던 작가와 장르를 대중에게 소개함으로써 미술계의 지평을 넓히고 대중적 인지도를 향상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4년 쿠사마 야요이, 2015년 페르난도 보테로, 2017년 모리스 블라맹크, 2018년 니키 드 생팔 등, 미술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가임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을 소개하였다. 2021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 괄목할만한 미술적 성장을 하고 있지만 그 성과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장르를 소개해왔다. 2021년 <나무, 그림이 되다>를 통해 2000년대 이후 대형화, 다양화한 목판화의 세계를 조명하였고, <내맘쏙: 모두의 그림책>에서는 디자인·일러스트 장르로 알려진 그림책을 미학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림책도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수 있음을 알린 바 있다.


특히 서울서예박물관에서는 2016~2017년 <위대한 낙서>를 통해 서예와 그래피티를, 2019년 <서예, 그 새로운 탄생>에서는 서예와 미디어아트를 융합하는 한편, 2020년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한국근대서예명가전>을 개최하여 서예의 전통을 살펴본 바 있다. 또한, <ㄱ의 순간>에서는 한글을 주제로 하여 전통 서예와 현대미술이 각각 또는 서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서예의 가능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혔다. 이 지점에서 이번 전시는 서예의 관점이 아닌 캘리그래피의 관점에서 서예의 확장가능성을 살펴보는 기회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예술의전당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전통 서예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한편,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인접 장르의 예술성과 미감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서예의 대중화와 저변 확대에 힘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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