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YTN뉴스영상캡쳐
미국과 이란의 전쟁 전면에는 항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등장한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주연 자리를 내어준 뒤에도 배후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인물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다. 부패와 독재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네타냐후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외부의 적인 이란을 집중 공략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실이라면, 스스로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의 ‘1호 첩보원’으로 활동하는 네타냐후의 또 다른 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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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원에서 외교관, 최연소 총리까지
네타냐후는 등장부터 충격적이었다. 1972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항공기를 납치했을 때, 인질 구출을 위해 투입된 특수부대 요원 중 한 명이 당시 22세의 혈기 왕성한 장교 네타냐후였다. 그는 어깨에 관통상을 입으면서도 임무를 완수했다. 형 요나단 네타냐후는 4년 뒤 ‘엔테베 작전’에서 전사하며 국가 영웅으로 산화했다. MIT 출신의 촉망받는 컨설턴트였던 그는 그날로 ‘테러와의 전쟁’ 서사의 중심으로 사라졌다.
1980년대 미국 외교관 시절, 그는 세련된 영어와 중후한 목소리로 미국 보수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복잡한 중동 정세를 ‘선과 악의 대결’로 단순화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공화당 핵심 인사와 긴밀히 소통했다. 1988년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그는 1996년 직선제로 치른 총리 선거에서 시몬 페레스를 꺾고 46세 최연소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안보 아니면 붕괴’라는 단순 메시지는 양날의 칼이 됐다. 첫 집권기(1996~1999년) 이후 치른 1999년 총선에서 패배하며 정계를 잠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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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와 화려한 복귀
2001년 9·11 테러는 강성 지도자인 그를 다시 이스라엘 정치로 불러들였다. 외무장관(2002~2003년), 재무장관(2003~2005년)을 거쳐 2009년 총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2010년대 내내 선거와 연정을 반복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네타냐후에게 정치는 타협이 아니라 정적을 하나씩 제거하는 ‘숙청 작전’에 가까웠다. 모사드 수장과 직접 소통하며 정적 동향을 파악했고, 안보 기밀을 명분 삼아 언론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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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장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 전역을 기습했다. 네타냐후는 전쟁을 지속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유지했다. 가자지구를 넘어 레바논, 예멘, 이란 본토까지 전선을 확대했고, 사퇴 여론을 ‘전시 상황’이라는 명분으로 억누르는 정치적 계산을 이어갔다. 지난해 6월 이른바 ‘12일 전쟁’에서 그는 이란 본토에서 핵 과학자 9명과 군 고위 간부 30여 명을 암살했다. 지난달 28일부터는 미국과 손잡고 이란과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네타냐후를 끊임없이 전쟁으로 이끄는 동기는 무엇일까. 이번 전쟁은 인류 역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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