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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이 낳은 정치 거목 永眠에 들다’ 최명호
  • 기사등록 2016-02-22 10: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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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출신으로 7선 국회의원을 지난 야당의 원로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지난 20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이에 포항지역에서도 전·현직 시장들이 서울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찾았으며, 지역 야당 인사들도 조문을 하는 등 애도가 이어졌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20일 오후 빈소인 서울성모병원을 직접 찾아 조문했으며, 박기환 전 포항시장도 21일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외에도 허대만 더민주당 포항남·울릉 예비후보 등 포항지역 야당 인사들도 잇달아 빈소를 찾았다.

이 전 총재는 1937년 포항 북구 청하면 필화리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6학년때 부산으로 전학갔다. 이후 그는 부산 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60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 4·19 혁명 도화선이 된 고려대 4·18 시위를 주도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4·19 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

제7대 국회인 1967년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부산에서 8~10대 의원을 내리 역임하며 야당 중진이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규제에 묶여 11대 국회에서는 출마하지 못했다. 이후 1985년 12~13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에 출마해 당선됐다.

그는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 김종필 전 총재의 공화당과 3당 합당시 참여를 거부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무소속 홍사덕 이철 의원 등과 함께 '꼬마 민주당'을 창당, 총재 자리에 올랐다.

199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민주연합과 합당해 민주당을 창당하고 공동대표가 됐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는 전국구로 당선됐다.

199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 뒤 야당 총수로 전성기를 누렸으나 김 전 대통령의 정치복귀 뒤 새정치국민회의 창당과정에서 배제됐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합당하며 1998년 한나라당 총재대행을 지냈고, 2002년 대선에서는 과거 동지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새천년민주당 중앙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고문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 다시 참여정부에 비판적 시각을 보이며 2007년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중앙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역임하는 등 여야를 넘나들었다.

고인의 장례식은 4ㆍ19 민주사회장으로 치뤄지며 장례위원장은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맡는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경의씨와 아들 성호씨 등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4일 오전이다. 장지는 4·19 국립묘지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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