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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계금(季金) 장군 후손’ 보령 방문 - 13일, 선조의 넋을 기리기 위해 오천면에 있는 계금장군 청덕비 답사 김흥식
  • 기사등록 2015-08-13 10: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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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금장군 청덕비


명나라 절강성의 수군장으로 임진왜란 때 3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보령 오천에 있는 충청수영성에 상륙했다가 전라도로 이동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대첩에 참여, 왜군을 토벌한 계금장군의 후손이 보령을 방문했다.

 

계금장군의 후손일행은 지난 12일 경남 통영시에서 개최한 한산대첩축제에 초청을 받아 한국을 방문 하게 됐으며, 후손 방문단과 순천향대 박현규 교수, 보령문화연구회와 연결돼 13일 보령 방문 하게 됐다.

 

계금장군 후손들은 당시 비문을 작성한 승문원 교리 안대진 선생 후손과 함께 오천에 있는 계금장군 청덕비와 웅천읍 황교리에 위치한 안대진 선생 묘를 답사 했으며, 보령댐과 성주사지 등 보령 지역을 둘러본 후 저녁만찬으로 일정을 마무리 했다.

 

계금 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등장한 인물로 159811월 노량대첩에 참전했으며, 1598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왜란이 종결된 후에도 곧바로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옛 진영인 오천으로 돌아왔다가 15994월 명나라로 귀환했다.

 

유격장군 계금의 청덕비는 장군의 덕을 칭송하고 왜적을 빨리 무찌르기를 기원하며, 장군의 위엄을 빌려 바다에서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임진왜란(1592~1598) 당시 조선에 출병했던 명나라 장수에 대한 유일한 공덕비로 알려져 있다.

 

계금장군 비문 해독에 따르면, 계금 장군이 전쟁을 치르는 중 부하장수를 잘 보살피고 고을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며, 한 일화로 갑자기 바다에 폭풍이 일어 많은 배가 침몰하자 조선의 사공 중 물에 젖어 옷이 언 자를 보고 자신의 옷을 벗어 입혀줄 정도의 인덕과 어린아이일지라도 속이지 않은 청렴함을 지녔다고 기록됐다.

 

또한, 정유재란(1597~1598) 당시 백성들이 짐을 운반해주고도 삯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우마의 나이와 털색을 기록해 삯을 지급했다는 일화는 권력에 취하기 쉬운 전장의 장수가 타국의 백성을 먼저 살핀 애민 사상도 엿 볼 수 있다.

 

한편, 15984월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61-12에 세워진 유격장군 계금의 청덕비는 높이 104cm, 48cm, 두께 14.3cm로 화강암 재질로 되어 있고, 비문은 승문원 교리 안대진이 1598(선조31)에 작성했다.

 

비석은 20009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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