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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공 민주평화상, 민족 혼을 일깨운다 - - 광주가 낳은 독립운동가 정치인 박광천
  • 기사등록 2019-05-17 14: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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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시가 제정한 해공 민주평화상의 상패


광주시(시장 신동헌)가 드디어 해공 신익희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해공 민주평화상을 제정했다.

너른고을 광주시는 지난 15일 해공 신익희 선생의 자주독립, 민주주의 수호와 인재 양성 등 핵심가치를 고찰, 재조명하여 해공 민주평화상 시상요강을 발표했다.

해공 민주평화상은 평화통일 부문, 의정발전 부문, 글로벌리더 부문으로 나누어 시상하는데, 수상자에게는 각각 부상으로 1천만원과 상패가 수여되며, 611일까지 우편과 팩스 등으로 추천서를 접수하고 공적심사를 거쳐 해공기념주간인 78일 수상자를 공표할 예정이다.

▲ 해공 신익희선생 생가


해공 신익희 선생은 경기 광주(廣州)에서 판서 신단(申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漢城外國語學校) 영어과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政經學部)에 들어가 한국 유학생들과 학우회(學友會)를 조직하고 총무·평의회장·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기관지인 학지광(學之光)을 발간하여 학생운동을 하였다. 1913년 졸업과 동시에 귀국,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되었다.

1918년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임시정부수립과 동시에 내무차장·외무차장·국무원 비서장(國務院秘書長외무총장 대리·문교부장 등을 역임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1945121일 임시정부 내무부장 자격으로 환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大韓獨立促成國民會) 부위원장, 자유신문사(自由新聞社) 사장, 국민대학교(國民大學校) 초대학장 등을 겸하다가 그 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南朝鮮過渡立法議院) 대의원에 피선, 1947년 의장이 되었으며, 1949년 민주국민당(民主國民黨)을 결성하였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 다시 국회의장에 피선되고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民主黨)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최고위원이 되었다.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자유당의 이승만과 맞서 호남지방으로 유세가던 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광주시는 해공 상이 과거와 현재, 미래지향적인 관점과 이념적 이데올로기를 포괄하여 수상자를 결정하고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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