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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 참전의 날! 세계평화를 향한 이정표 -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 박귀월
  • 기사등록 2017-07-25 14:40:49
  • 수정 2017-07-25 14: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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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서부보훈지청 보상과

양동석

이제는 지난 봄의 선선한 바람의 청량함은 기억나지 않고 뜨거운 태양과 높은 습도만이 우리를 반겨주는 7월의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이 돌아왔다.


‘유엔군 참전의 날’은 하나된 민족이 서로의 내전으로 피흘리고 있을 때,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유엔군이 남한을 돕기 위해 1950년 7월 5일 최초로 파견된 스미스 특수부대를 시작으로 참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6.25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정하여 기념하는 날이다.


6.25 전쟁 발발 초기에 남한은 북한의 준비된 전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꾸준히 전쟁을 준비해온 북한과 그렇지 못한 남한의 차이는 컸기 때문에 남한은 속수무책으로 후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한 패전의 분위기 중에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에 따라 유엔 참전이 결정되었고 이로 인해 남한은 북한의 파상공세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하여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이제는 남한의 북한에 대한 파상공세가 시작된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계기로 연합군은 압록강까지 진군할 수 있었으나 갑작스런 중공군의 참전으로 현재의 휴전선 인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는 유엔이 전쟁 당사자의 한 편만 들어 참전한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유엔은 그 성격이 평화유지군이기 때문에 전쟁에 개입할 시에도 일방적인 한 편만 드는 경우가 없다.


하지만 625전쟁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단 유엔을 거부하며 적대시한 북한의 태도가 있었으며, 전쟁의 성격이 단순한 내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에 참전한 파병국은 총 21개국으로 16개국에서 전투병력을 지원하였으며 5개국이 의료 또는 시설을 지원하였다.


21개국에서 파병된 인원은 근 200만명에 이르며, 이는 그들이 참전이 단순한 정치적인 액션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번영은 단순히 우리만의 노력이 전부인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평화를 바라는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하는 국가로 바뀐 가장 성공적으로 일어선 국가이다.


지금의 풍요로운 일상생활이 있기까지 우리가 받았던 큰 도움만큼 이제 우리도 타인을, 타국가를 위해,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힘써야 하는 시기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도와준 유엔 평화유지군의 도움을 가장 보람차게 되갚는 방법일 것이다.


머지않은 7월 27일,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세계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UN군과 국군 파병부대들의 공헌과 희생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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