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7년 12월 16일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 노태우(盧泰愚)가 당선되었고, 이어 1988년 4월 26일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여당 125석, 야당 174석으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전체 의석의 42%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한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국회가 등장하였다.
이후 민정당은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안 부결, 국정감사 부활 등 정국주도권을 야당에게 내어주고 고전하게 된다.

투표율과 함께 의석수를 살펴보면,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25석(지역구 87, 전국구 38), 평화민주당이 70석(지역구 54, 전국구 16), 통일민주당이 59석(지역구 46, 전국구 13), 신민주공화당이 35석(지역구 27, 전국구 8), 한겨레민주당이 1석, 무소속이 9석을 차지하였다.

통일 민주당은 김영삼이 부산서구에서 당선되어 헌정 초유의 무려 9선 의원이 되고, 득표율에서도 2위를 기록했으나 실제 의석수는 59석에 그쳐 평민당(70석)에 밀려 원내 3당으로 밀려난다.
공화당은 35석을 얻으면서 교섭단체는 만들 수 있게 되었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충청도 지역에서 27석 중 15석을 획득하는 데 그치는 등 부진한 결과이다.
19.3%의 득표율에 그쳤지만 원내 제 2당이 되었고, 호남이라는 확고부동한 터전을 갖추게 된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그 위상이 상당히 올라간 상태가 되었다.
여소야대 정국은 국회의 역할을 높이게 되어 오히려 민주정치 본연의 모습이 살아난 면이 있다.
국회 청문회가 TV로 생중계 되는 가운데 청문회 스타의원도 탄생하고, 성금을 모아 한겨레신문이 창간되기도 하며, 5공 군사정권과 측근들의 비리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 되었다.
1988년 11월23일 전두환 전(前)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에서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대국민 사과문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한다.
그는 자신의 재임기간 중 일어났던 모든 과오와 비리를 시인, 사과하고 어떠한 비난과 추궁도 각오한다는 내용의 사과문 발표와 함께 개인재산과 정치자금 139억 원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발언을 한다.
발언을 마친 전두환씨는 이날 오후 3시20분쯤 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집을 나와 설악산 백담사로 들어가 1990년 12월30일까지 은둔생활을 이어갔다.
어떤 면에서는 6.29선언과 여소야대 4당 체제는 사회의 다양한 욕구가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는데, 전교조의 탄생, 프로야구 선수협회 시도, 경실련의 등장, 무단방북(문익환 목사, 임수경 학생, 문규현 신부 등) 등이 모두 이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러한 상황을 민주화의 성숙과정으로 보는 면이 있는 반면 민정당을 비롯한 주류 기득권 세력은 공권력의 실추라든가, 정부가 불만세력에 휩쓸린다는 식으로 불편해 하는 면이 강했다.
3당합당 혹은 3당야합
급기야 ‘물태우 당’라는 조롱을 받던 민정당은 국회를 장악하기 위해 원내 제 2당인 평민당과의 합당을 추진했으나 김대중 총재에게 거절당하자, 1990년 1월 22일, 제2야당 통일민주당(약칭 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약칭 공화당)과 합당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키는 사건이 일어난다.
인터넷에서 3당 합당 이미지를 검색해보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외에 노무현, 김상현의 모습이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3당 합당은 무슨 정치적 신념의 공유 등이 아니라, 13대 국회의 세력구조로는 집권이 어렵다고 판단한 김영삼 총재와, 내각제 개헌을 목표로 차기집권을 꿈꾸던 김종필 총재가, 노태우가 내미는 ‘정권잡기’를 위해 손을 잡기로 한, 그냥 3당 야합이라 불러도 될 일이다.
3당 야합의 결과 호남과 비호남의 지역대결 구도는 더욱 심화 되었고, 민자당은 대구와 경상북도, 부산과 경상남도, 충청도 등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며 선거 압승을 장담하고 있었다.
정주영과 통일국민당의 등장
1992년 3월 24일 민주정의당이 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과 통합해 창당한 민주자유당, 평화민주당과 신민주연합당의 통합으로 탄생한 민주당, 현대그룹의 정주영(鄭周永)을 중심으로 탄생한 통일국민당의 3파전 양상으로 대한민국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 선거 전 194석을 차지하고 있었던 민자당은 45석을 잃은 149석, 평민당을 신민주연합당으로 개편하고 꼬마민주당과 기존의 운동권 세력들도 끌어들이는 등 화합을 시도한 민주당은 97석을 차지했다.
주목할 것은 현대그룹의 회장이었던 정주영이 창당한 통일 국민당의 성과이다.
정주영은 청문회에서 “정부에 직접 로비를 했느냐”는 노무현 의원의 질문에 “지금까지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기에 그러했다.”고 응수하여 노무현으로부터 “국회가 바지 저고리였던 거죠.” 라는 자조 섞인 독백을 하게 만들기도 한, 우리나라 역사에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
정주영이 여야의 낙천자들을 대상으로 영입해 창당한 통일국민당이 바람을 일으키면서 일부 보수층들이 민자당 대신 국민당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31석을 획득하여 원내교섭단체를 확보하면서 제3당으로 부상했다.

국민당의 바람은 민자당의 돌풍을 차단할 수 있었고 정주영은 대통령에 출마하여 비슷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도 하지만, 두고두고 민자당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된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결과
1992년 12월 18일, 민자당 김영삼 후보, 민주당 김대중 후보, 국민당 정주영 후보의 3파전 양상에서, 김영삼 후보가 997만표(유효투표의 41%)를 획득, 804만표(33%)와 388만표(16%)를 획득한 김대중 후보와 정주영 후보를 물리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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