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1783~1873).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헌종이 죽자 영의정으로서 원범(元範)의 영립(迎立)을 주장하여 철종으로 즉위하게 하였다.
암행어사 제도의 부활을 건의하여 삼정(三政)의 문란을 다스리고자 노력하였으며 조선 500년 동안 가장 오랫동안 관직에 머물러 있었던 인물은 정원용 이였다.
무려 72년간이나 다섯 임금을 보필하며 관직생활을 했던 것이다. 20세에 문과 급제하여 관찰사, 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66세에 영의정이 되었다. 정조 임금부터 고종 즉위때까지 5대 임금을 섬겼으며 헌종이 승하하자 농사꾼이던 강화도령 이원범[철종]을 왕으로 옹립하기도 했다.
정원용은 관직 생활 72년 동안 하루 같이 근면하여 조정이나 민생문제에 온 힘을 다했으며 그의 일상생활도 지극히 검소하여 청렴결백한 생활을 한 명재상이었다.
조선 초기에 황희정승이 있다면 후기에는 정원용이 있었다. 두 사람은 명재상에다 청백리의 표상과 모범을 보인 닮은꼴이었다 두 사람 모두 오랜 관직 생활을 했고 나이도 황희 90세, 정원용 91세로서 세인들은 조선 시대에 두 사람이야 말로 가장 복 많은 정승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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