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창(平昌). 자는 자준(子俊). 호는 동호(東湖) 평원부원군 이영서(李永瑞)의 둘째 아들이다. 1470년(성종 1)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훈련원판관을 제수받았다.
조선시대는 철저히 문신 중심의 사회였다.
그래서 무과 출신자가 문과출신 자리에 오르게 되면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조선시대에 무과출신으로 유일하게 대사헌에 임명되었던 이계동 스스로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사양하였으나 그의 능력을 인정한 성종은 그를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그는 21세때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그후 승승장구하여 41세에 무과출신 최초로 대사헌에 되었다. 이계동은 중국어와 여진어에 능통했으며 당시 문무를 겸비했다는 칭송을 많이받았다.
조선시대가 가장 필요로하는 실력을 고루갖춘 문무겸비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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