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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웅치 구국항전을 되새기는제424주기 웅치전투 추모식 거행 - 호남을 지켜 나라를 구한 선열들의 숭고한 역사를 되새기며 김문기
  • 기사등록 2016-08-10 15: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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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이 왜군에 맞서 장렬하게 산화한 선열들을 추모하는 제424주기 웅치전투 추모식을 지난 11일 소양면 신촌리 웅치전적비에서 거행했다.

 

이날 행사는 소양면 신촌리 월상마을에 위치한 웅치전적비 광장에서 열렸으며 박성일 완주군수, 정성모 군의회 의장, 관내 기관단체장 등 150여명이 참석하여 분향과 헌화, 추모사 낭독, 추모 헌무‧헌가 등을 갖고 웅치전투 당시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순국으로 왜군의 전주성 진입을 저지해 국가수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소양면이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었음을 되새겼으며 내 고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시간이었다.

 

강시복 웅치전투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오랜 시간 저평가된 웅치전투가 완주군과 지역민의 관심 속에 역사적 가치를 바로 세워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참석자들에게 웅치를 지키다 장렬하게 죽어간 선현들의 자손임을 자랑으로 삼고 긍지와 자존심을 가진 실천적인 애향인이 되기를 당부했다.

 

웅치전투는 1592년(선조 25) 금산을 점거한 왜군이 험한 웅치재를 넘어 전주방면으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것으로,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 의병장 황박(黃璞), 김제군수 정담(鄭湛), 남해현감 변응정(邊應井) 등이 1592년 7월 8일 군대를 연합한 뒤 험한 지형을 이용해 왜군의 침입을 막았다.

장군 4명을 포함한 군사 3천명이 결사항전을 펼쳐 적병 수백명을 죽였지만, 전투력이 우세한 왜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전투 후에 웅치의 긴 고갯길은 조선군의 시체로 덮였다고 한다.

 

하지만 웅치전투는 전주를 지키는데 이들의 공이 실로 커서, 당시 권율장군은 행주산성의 전투보다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웅치전투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웅치전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그날의 명성을 영원토록 이어갈 수 있도록 웅치전투가 시작된 음력 7월 8일에 웅치전투 추모식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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