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덕수(德水), 자 숙헌(叔獻), 호 율곡(栗谷)·석담(石潭), 시호 문성(文成), 강원도 강릉 출생이다. 사헌부 감찰을 지낸 원수(元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1548년(명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다가, 다음해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념하였다.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盧慶麟)의 딸과 혼인하고, 다음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또한, 예언자적 능력도 뛰어나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 하고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으며 정치, 경제, 국방 등 모든 분야에 식견이 탁월한 정치가요,사상가이며 교육자였으며, 철학자였다.
그는 한국판 제갈공명, 한국정신사의 큰 산맥, 성리학의 대가,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천재는 단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타고난 건강이 좋지 않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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