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몸속의 불멸 코드 — 2025 노벨의학상이 밝힌 '면역의 오해'
  • 홍판곤
  • 등록 2025-10-30 23:14:14
  • 수정 2025-10-30 23:36:55

기사수정
"인간의 세포는 원래 스스로 병을 고치도록 만들어졌다." 놀랍게도 이 말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다. 우리 몸에는 손상된 세포를 재생하고, 바이러스나 암세포를 정리하는 정교한 복구 시스템, 즉 면역 메커니즘이 내장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고장 나서 병이 생기는 게 아니라, 혼란에 빠져 오작동하기 때문이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주목받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면역의 오해를 푸는 순간, 생명은 스스로 회복한다는 새로운 의학의 패러다임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암의 면역 회피 전략과 면역관문억제제의 작용 원리. 왼쪽은 암세포가 PD-L1을 통해 T세포의 PD-1과 결합하여 면역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이고, 오른쪽은 항체 치료제(PD-1 mAb, PD-L1 mAb)가 이 결합을 차단하여 T세포가 다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게 만드는 원리를 보여준다." 


[뉴스21 통신=홍판곤 ]


2025년 10월 6일,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포럼에서 노벨위원회는 올해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메리 E. 브룬코우, 프레드릭 J. 램스델, 시키몬 사카구치 세 명을 선정했다. 


그들이 밝혀낸 것은 우리 몸속의 '면역 브레이크', 즉 조절 T세포였다. 면역은 단순히 싸우는 기능이 아니라, 싸움을 멈출 줄 아는 지혜를 지닌 시스템이다. 감염이 끝난 뒤에도 면역 반응이 계속되면 오히려 몸을 파괴하기 때문에, 조절 T세포는 "이제 그만"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 정교한 브레이크 메커니즘이 바로 인간 생명의 자기 복구 능력을 지탱하는 핵심이다.

서울대병원 이승훈 교수는 "암은 면역의 적이 아니라, 면역의 오해에서 비롯된 질병"이라고 설명한다. 암세포는 우리의 면역 시스템을 교묘하게 속인다. 조절 T세포를 끌어들여 자신을 '아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암세포 주변에는 수많은 조절 T세포가 모여 "공격하지 마라, 저건 우리 편이다"라는 신호를 보낸다. 결국 킬러 T세포의 공격력은 약해지고, 몸의 복구 시스템은 내부의 배신자에 의해 교란된다. 즉, 병이 생긴 이유는 '면역이 약해서'가 아니라 면역이 잘못된 대상을 공격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을 오해하기 때문이다.


2018년 노벨의학상은 이미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로 이 원리를 임상에 적용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면역관문억제제'라 불리는 이 약은 조절 T세포가 내보내는 공격 중지 신호를 차단해 면역의 브레이크를 일시적으로 해제한다. 그 결과, 우리 몸의 킬러 T세포가 다시 깨어나 암세포를 공격하게 된다. 


이번 2025년 수상 연구는 이 '브레이크'의 존재 자체와 그 작동 원리를 규명한 업적이다. 의학은 이제 '병을 치료하는 기술'에서 '몸이 스스로 낫도록 돕는 기술'로 나아가고 있다.

"조절 T세포(Treg)의 형성 과정. 흉선(Thymus)에서 자기 항원에 대한 친화도가 높은 T세포는 조절 T세포로 분화되어 면역 억제 기능을 수행한다. 이 세포들이 암세포 주변에서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면역 시스템이 암을 공격하지 못하게 된다." 

  • 우리 몸은 하루에도 수천 개의 손상된 세포를 제거하고, 새 세포를 만들어낸다. 이 복구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우리는 살아있다. 조절 T세포는 그 균형의 중심에서 "과하면 멈추고, 모자라면 돕는" 조절자 역할을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몸은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암처럼 잘못된 세포를 보호하게 된다. 


노벨위원회가 강조한 말초 면역 관용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조화'를 의미한다. 즉, 인간의 세포는 태초부터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지혜를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불로장생은 오래된 인류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번 노벨의학상 연구는 그것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면역 균형의 회복이라는 과학적 목표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면역세포가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스스로 재생하고 복구하며, 이론상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불멸'은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은유적 표현에 가깝지만, 그 방향으로 인류는 이미 발걸음을 내디뎠다.


2025년 노벨의학상은 우리에게 '병의 근원'을 다시 묻는다. 질병은 외부에서 온 적이 아니라, 내부의 오해와 불균형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학은 몸속의 언어를 다시 해독하는 일이다. 면역의 브레이크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세포는 다시 자기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제천 제일장례예식장, ‘지목 전(田)’에 수년간 불법 아스팔트… 제천시는 뒤늦은 원상복구 명령 충북 제천시 천남동에 있는 제일 장례예식장이 지목이 ‘전(田)’인 토지에 십수 년 동안 무단으로 아스팔트 포장하고 주차장으로 운영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명백한 불법 행위가 십수 년 동안 방치된 가운데, 제천시는 최근에서야 현장 확인 후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문제의 부지(천남동 471-31 등)는 농지 지목인 ‘전’으로, ...
  2. [단독]"6년간 23억 벌었는데 통장은 '텅텅'?"... 쇠소깍협동조합의 수상한 회계 미스터리 [제주 서귀포=서민철 기자] 제주 서귀포시의 명소인 쇠소깍 수상 레저 사업이 수십억 원대 '수익금 불투명 집행 의혹'에 휩싸였다. 2018년 행정 당국의 중재로 마을회와 개인사업자가 결합한 '하효쇠소깍협동조합'이 매년 막대한 수익을 내고도, 회계 장부상 돈이 쌓이지 않는 기형적인 운영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 23억 ...
  3. 강동구 '법무부 청소년범죄예방' 단체 장학금 수여 및 송년회 개최 지난 11월24일(월) 지하철 5호선 굽은다리역에 위치한 [만나하우스]에는 행복한 웃음이 넙쳤다. 바로 강동의 명품단체 법무부 소속 ‘청소년범죄예방 강동지회(회장 이석재)’ 위원들이 청소년들에게 장학금 수여 및 송년회를 위해 하나 둘씩 모여 웃음꽃을 활짝 피었기 때문이다. 이 날 행사에 내빈으로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박지나 부...
  4. “We Serve” 실천 60년…울산라이온스클럽이 미래 100년을 향하다 [뉴스21 통신=최세영 ]▲ 사진제공=울산라이온스클럽2025년 12월 11일(목) 오후 6시 30분, 울산 보람컨벤션 3층에서 울산라이온스클럽 창립 6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개최됐다. 이번 행사에는 지역사회 인사뿐 아니라 울산 무궁화라이온스클럽을 포함한 30개 라이온스클럽의 회장단과 라이온들이 참석해 울산라이온스클럽의 60년 역사를 함께 축...
  5. 파주시, 전국 최초 '공공 재생에너지 1호 발전소' 착공 파주시는 국내 지방정부 최초로 직접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 중소기업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지난 3일 밝혔다.파주시는 지난 2일 ‘파주 공공재생에너지 1호 발전소’의 착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공사 일정에 돌입했다.이번 착공식에는 발전사업자인 파주시와 파주도시관광공사, 전력 공급 중개를 지원하는 SK이노베이션 E&S를 비...
  6. 2025 서울오픈 태권도대회 성황리 개최...청소년˙성인 모두가 하나 된 열정의 무대 2025년 12월 7일, 서울 종로구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 실내체육관 2층에서 **'2025 서울오픈 태권도대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서울특별시종로구태권도협회가 주최˙주관하고 서울시와 서울특별시체육회가 후원한 본 대회는 지역 태권도 활성화와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목표로 진행되었으며, 유급자 품새부터 태권체조, 종합시범까지 ..
  7. “염화칼슘에 가로수가 죽어간다”… 제천시,친환경 제설제 782톤’ 긴급 추가 확보 충북 제천시가 겨울철마다 반복돼 온 염화칼슘 과다 살포로 인한 도심 가로수 피해 논란 속에, 뒤늦게 친환경 제설제 782t을 추가 확보했다.환경 단체와 시의회의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시가 올해 겨울철 제설 정책을 전면 수정한 것이다.지난 9월 19일 열린 ‘제설제 과다 살포에 따른 가로수 피해 실태 간담회’에서는 “인도 ...
역사왜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