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2·3 불법계엄’ 당시 작성된 수거(체포) 대상 명단에 자신이 포함된 것을 두고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21을 축구계에 따르면 차 전 감독은 전날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축구 꿈나무와 지도자 22명에게 상을 수여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시상식이 열린 이날은 1년 중 가장 뜻깊은 날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욱 울컥한 마음이다. 하마터면 여러분을 못 만날 뻔했다"고 밝혔다. 12·3 불법계엄 주도자 중 한 명인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에 자신이 포함된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저는 축구를 사랑한다. 그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 축구가 아닌 다른 일이나 가치에 관해서는 관심이나 욕심이 없다. 아는 것도 많지 않다"며 정치적 사건에 연루된 것에 대해 당혹스러운 심정을 표했다.
이어 "작은 축구상을 주며 어린 친구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건 보람찬 일이다. 소박하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제법 멋진 행사가 됐다"며 "이렇게 시상식을 발전시킨 (막내) 차세찌 대표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그동안 한 번도 칭찬한 적이 없는데 수고했다는 말도 못 하고 헤어질 뻔했다"고 털어놨다.
차 전 감독은 "자세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50년 전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다 지나간 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또 그 일이 일어났다. 믿기지 않는다. 내 이름이 그 수첩에 왜 적혀 있는지 황당하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며 "잘 지내고 있는데 (50년 전 겪었던 일과 함께) 예전에 큰 충격을 받았던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재판 등) 일들이 다 끝나지 않고 진행 중이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며 "모든 일이 빨리 정상화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차 전 감독은 체포명단에 포함된 충격으로 그의 큰아들 차두리 감독의 프로 데뷔전도 가지 않을 예정이다. 차두리 감독은 화성FC 초대 감독으로 선임돼 성남FC와 K리그2 원정 경기를 통해 오는 23일 데뷔전을 치른다.
차 전 감독은 "안정되지 않은 마음 상태로 인해 경기를 보러 갈 수 없다"라며 "아들은 섭섭할 수 있지만 사태 정리가 안 돼 여러모로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4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 주요 인사 500여 명의 명단이 ‘수거 대상’으로 기재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해당 명단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방송인 김어준 씨 등과 함께 차 전 감독도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