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한주은 작가 작품혜원아트갤러리는 6월 27일부터 7월 30일까지 북유럽의 온기를 도자 예술로 전하는 작가 한주은 개인전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개최한다.
작가 한주은은 스웨덴 예테보리대학(Gothenburg University) 도예과와 찰머스대학(Chalmers University) 응용정보공학 석사학위를 마치고, 스웨덴과 한국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도자 예술의 세계를 선보여 왔다. 특히 북유럽풍 식기로 주목받고 있으며, 기능성을 부여한 공예 작품과 심미성을 강조한 오브제 작품으로 장르적 경계를 넘나듦은 물론 최근 미디어 아트까지 작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도자기에 담긴 북유럽의 온기(溫氣)’
한주은의 도자기에는 오랫동안 스웨덴에 거주하며 경험한 이색적 환경과 문화,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북유럽의 작은 골목에서 만난 소박한 오브제와 풍경들을 무의식에 내재돼 있던 한국적 요소들과 함께 도자기 위에 펼쳐내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유럽인들에게는 무심히 지나쳐 가는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일깨워주고, 한국 관람자들에게는 북유럽의 이색적 풍경을 따뜻한 온기로 선사한다.
스웨덴에서 그의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집이었다. 청록, 주황, 노랑, 검정 등 형형색색으로 물든 뾰족 지붕이 볼을 맞대고 서 있는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인상적이었다. 외관에 해당하는 집에 대한 관심은 점차 건물의 내부로 향했고, 자연스럽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태도에 대한 것으로 옮아갔다. 예컨대 햇빛을 실내로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해 창문을 많이 내는 건축 양식이나 그 안에 놓인 단순하고 우아한 가구들, 창가에 놓인 식물이나 장식품, 햇볕을 쬐며 낮잠 자는 고양이의 모습과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스웨덴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달라하스트(Dalahäst) - 달라나(Dalarna) 지방에서 생산되는 알록달록한 목각 말로 행운을 상징함 - 는 그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오브제였다. 그들에게 집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쉼’ 그 자체이며, 그 내부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요소들 또한 쉼과 여유를 중시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삶의 태도가 깃들어 있어 이제는 그가 기억하고픈 아름다운 추억의 대상이자 작품의 주요한 소재가 됐다.
‘우리 피카할까(Ska vi fika)?’
스웨덴어로 피카(FIKA)란 ‘커피와 함께하는 휴식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로 수세기에 걸쳐 내려오는 스웨덴 문화의 핵심 요소다.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피카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데, 이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행위를 넘어 바쁜 일상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일상의 관습이다. 이 때문에 누군가에게 피카를 청하는 것은 곧 ‘상념을 잊고 함께 현재를 즐기자’는 의미를 포함하는 깊은 뜻이 숨어있다. 한주은의 식기 가운데서도 커피나 차를 마실 수 있는 컵과 티포트가 유독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이런 연유다. 컵을 만드는 시간은 작가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또 누군가 이 컵을 사용하며 기쁨을 얻는다면 그 역시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자 행복이다. 이에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컵을 빚음으로써 그가 경험했던 북유럽의 여유와 풍요로운 정서를 전하는 일종의 ‘피카’를 청한다.
‘한국과 북유럽이 만나는 식탁’
한주은의 도자기에는 북유럽과 한국의 다채로운 요소들이 교차한다. 먼저 그가 사용하는 블루페인팅의 기원은 14세기 초 하얀 바탕에 푸른 염료로 그림을 그린 중국 청화백자(靑畵白磁)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4세기 말 조선, 17세기 일본으로 전해져 선풍적 인기를 끈 가운데 동양을 침략했던 유럽인들 또한 청화백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 그중에서도 동인도회사를 소유했던 네덜란드가 청화백자 재현에 강세를 보여 유럽식 청화백자 격의 블루페인팅 도자기인 ‘델프트 블루(Delft Blue)’를 탄생시켰는데, 이는 스웨덴을 포함한 주변 북유럽 국가들에 블루페인팅 도자기가 널리 유행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스웨덴의 블루페인팅 도자기는 1300℃ 고온에서 구워 가볍고 단단하며 채도가 높아 선명한 푸른빛을 띤다. 반면, 한국 청화백자는 묵직하고 채도가 낮아 깊고 은은한 푸른빛을 띠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작가를 포함한 우리가 유럽의 블루페인팅 도자기에 이국적이면서도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인데, 실타래처럼 얽힌 역사를 뒤로하고 오늘날 한주은은 그만의 미감으로 새롭게 재해석된 한국적 블루페인팅 도자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유럽식 백자인 포슬린으로 한국 전통의 민무늬 달항아리를 만드는가 하면, 달항아리의 형태에 블루페인팅으로 전면을 채우기도 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나뭇잎과 줄무늬는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지만 여기에 한국 전통 회화의 주요 소재인 목단화나 한글 자음을 패턴처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또 도자기 가장자리에 한옥 처마 끝 막새기와의 형상을 장식처럼 둘러 그린 것은 한국 전통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마치 서양의 레이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감상이 가능한 흥미로운 매력을 지닌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대중에 사랑받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더 한국적이고 편안한 형태로, 친근하면서도 새로움을 주는 블루페인팅 기법으로 한주은만의 북유럽풍 도자기를 선보이고자 한다. 싱그러운 녹음이 짙은 7월, 우리의 식탁 위에서 충만한 온기를 전하는 한주은의 도자기를 통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누려보기 바란다.
한편 이번 전시는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4)’와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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