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해낼 수 있다는 당신의 믿음은 옳다
  • 김만석
  • 등록 2019-10-25 14:20:53

기사수정


2019년 10월 12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케냐의 국민 영웅인 육상선수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는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1시간 59분 40초에 완주해냈다. 인류 역사상 풀 마라톤을 2시간 이내에 주파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물론 그의 성취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번 기록이 세워진 곳은 정식 육상 경기 가 아니라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의 스폰서를 받아 진행된 일종의 이벤트성 행사였고, 킵초게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지하고 있는 각종 보조수단 (페이스메이커, 특수 운동화, 코스 내에서 최단거리를 표시해주는 레이저 포인터 등)을 있는 대로 활용하여 결승선을 통과했다. 따라서 이번 기록은 공식적인 세계 신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며, 선수 본인의 개인 최고 기록으로도 활용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변칙을 감안한다 해도, 마라톤 2시간의 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9년, 마라톤 세계 신기록은 스웨덴의 알렉시스 알그렌(Alexis Ahlgren) 선수가 세운 2시간 36분 06초대였다. 그저 그런 선수도 아니고, 조금 잘 나가는 선수도 아니고, 역사상 가장 빠른 선수의 기록을 40분 가까이 단축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실제로 저명한 생리학자와 육상 코치를 비롯하여 수많은 전문가들은 '마라톤 서브 2(2시간 이내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불가능한 목표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나 불가능을 두려워 하지 않는 선수와 스포츠 과학자들은 도전을 계속했고, 마침내 마라톤 종목의 공식 기록을 2시간 01분 39초, 비공식 기록을 1시간 59분 40초 까지 단축시키는 데 성공했다.


살면서 마라톤은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킵초게 선수의 서브 2 달성은 개인적 으로 굉장히 뜻깊은 일이다. 1년 전 나는 그가 2시간의 벽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은 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인듀어》는 그가 마라톤 서브 2라는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2017년 5월 6일, 킵초게는 전 세계 취재진 앞에서 최첨단 기술의 지원을 받은 혹독한 훈련의 결과물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가 결승선을 통과한 순간 전광판에 표시된 기록은 2시간 00분 25초. 모두가 염원했던 1시간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결과였다. 내 마음을 울린 것은 기록 달성에 실패한 후 진행된 그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경기에 대한 감상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그는 담담한 태도로 얘기한다. "저는 2시간의 벽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인류가 단축 시켜야 할 기록은 딱 25초 밖에 안 남았어요." 이 문장을 번역하는 순간 나는 그가 도전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2년 뒤 그는 자신이 말한 25초를 직접 단축시켰다. 어쩌면 불가능을 비웃는 이 마음가짐이야말로 그의 주요한 성공 비결이 아니었을까? 그의 서브 2 달성을 보도한 기사에 '거대 자본과 과학 기술을 투입해서 세운 기록이므로 대단할 것 없다'는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그의 성공은 막대한 돈과 최첨단 기술, 수많은 인력을 쏟아부은 초대형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몇 가지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다. 엄청난 자본을 투입하여 서브 2 프로젝트를 출범시킨 스폰서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라톤 선수들을 불러 모아 선발 테스트를 진행했다. 킵초게는 이미 유수의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탑 플레이어였지만, 막상 선발 테스트에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케냐의 들판에서 맨다리로 뛰는 데 익숙한 그가 트레드밀이나 특수 운동화 같은 첨단 장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 관계자들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그의 모습이 '빙판 위에서 허우적대는 새끼 사슴 같았다'고 평했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젝트 책임자는 고심 끝에 그를 최종 3인의 도전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출중한 과거 기록과 더불어 불가능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도전을 앞두고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그는 회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차이는 그뿐입니다."  나는 실패를 딛고 이뤄낸 그의 성취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마라톤 서브 2는 인류에게 불가능한 목표였지만, 결국 그는 해냈다. 인간으로서는 깰 수 없다고 믿었던 벽이 깨졌는데, 다른 벽이라고 깨지지 않으리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인류의 한계에 비하면 특정한 성별이나 인종, 연령, 스펙의 한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직장인이든, 프리랜서든, 학생이든, 주부든, 인간은 누구나 자기만의 마라톤을 뛰고 있다. 우리 앞에는 매일같이 높다란 벽이 펼쳐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벽을 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해낼 수 있다는 당신의 믿음은 옳다. 불가능하다는 주변의 평가는 틀렸다.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차이는 그뿐이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리얼시그널' 웹사이트...부동산, 예금, 주식, 가상자산 보유 현황 확인 (사진=네이버db)[뉴스21 통신=추현욱 ]고위 공직자들의 실제 부동산 보유 현황을 보여주는 웹사이트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서비스 '리얼시그널'이 그것이다.리얼시그널에는 대통령,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 법관 및 검사, 군 장성 등 약 7000명의 자산 내역이 담겨 있..
  2. 의왕시 사근행궁, 의로운 왕의 도시가 잊지 말아야 할 자리 [뉴스21 통신=홍판곤 ]정조는 '의로운 왕(義王)'이었다. 그는 백성을 사랑했고, 아버지를 그리워했으며,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세우려 했다. 사근행궁에 들렀을 때마다 마음속에 품었던 건 단 하나였다."아버지를 배알하고, 백성을 돌보는 그 길이 곧 임금의 도리다."그 길 위에 오늘의 의왕(義王)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이름의 ...
  3. 단양 강풍 속 패러글라이딩 비행 중 추락…탑승자 1명 중상 지난 22일 오후 3시 34분께 충북 단양군 단양읍 노동리 양방산 전망대 인근에서 패러글라이딩 비행 중이던 50대 남성 2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단양소방서에 따르면, 사고 당시 조종사 A 씨와 동승 고객 B 씨는 이륙 직후 강풍에 중심을 잃고 인근 야산으로 추락했다. 현장에 있던 패러글라이딩 업체 직원이 즉시 119에 신고했으며, 소방..
  4. 제천시, 초고압 송전선로 ‘1년 전부터 인지’하고도 침묵… 충북 제천시가 초고압 송전선로(345kV 신 평창–신 원주) 건설사업이 지역을 통과할 가능성을 지난해 11월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하지만 시는 이 사실을 시민에게 단 한 차례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아 ‘행정의 무책임’과 ‘정보 은폐’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11월 제천시를 포함한 해당 구...
  5. 태백 라마다 호텔 충격 증언 "1,910명 등기는 껍데기, '무제한 멤버십' 판매가 본질" 태백 라마다 호텔 사태가 1,910명의 '지분 쪼개기' 등기 분양 문제로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로는 '무제한 멤버십 회원권' 판매를 통한 변칙적 수익 창출이 더 심각한 문제의 본질이라는 내부 관계자의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과거 태백 라마다 호텔의 내부 관계자 A씨는 "기사화된 1,910명의 등기 문제는 전체 사기 규모의 100분..
  6. 국내 유명 배우 겸 모델 A씨, 캄보디아 인신매매 모집책 혐의…"한국 여성 강제전환" 국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배우 겸 모델 A씨가 캄보디아 현지 범죄조직의 한국인 여성 모집책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23일 보도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4월 30대 여성 B씨에게 “캄보디아에서 일본어 통역 일을 함께하자”고 제안한 뒤, B씨를 프놈펜으로 출국시켰고 현지에서 조직원에게 500만원을 받고 넘긴 혐...
  7. 태광그룹, 애경산업 지분 63% 4700억원에 인수...매매 예정일자, 내년 2월 19일 [뉴스21 통신=추현욱 ] 태광산업 컨소시엄이 4700억원에 애경산업을 인수한다.AK홀딩스와 태광산업 등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주권 양수도 방안을 승인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매각 대상 주식은 애경산업 보통주 1667만2578주다. AK홀딩스 보유주식 1190만4812주와 애경자산관리 보유주식 476만7766주다.이는 애경산업 전체 발행주...
역사왜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