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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공개 - 방공호 따라 유해 40여 구 발굴…손목에 삐삐선 감기고 머리 위에 녹슨 탄피 - 73년 전 집단학살 생생히 드러나…희생자 대부분 부역혐의로 인한 가족희생 김민수
  • 기사등록 2023-03-29 18:5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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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성재산 방공호에서 드러난 유해발굴 전체 모습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진실화해위원회)의 첫 유해발굴지인 충남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서 73년 전 당시 집단학살 정황을 생생히 보여주는 온전한 형태의 유해(유골)와 유품이 다수 발굴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7일부터 20여 일간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에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을 진행해왔다. 이번 유해발굴은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 희생사건에 대한 첫 국가차원의 유해발굴이기도 하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유해 수습을 앞두고 28일 오전 11시 발굴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날 발굴현장 공개는 한국전쟁 당시 생생한 집단학살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유해발굴지는 1950년 10월 4일 온양경찰서 업무가 정상화되면서 좌익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회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 성재산 일대와 온양천변에서 학살한 다음, 그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또한 1951년 1·4후퇴 시기인 1월 초에는 도민증을 발급해 준다며 배방면사무소 옆 곡물창고 2개와 모산역 부속창고에 좌익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구금한 후, 한 집에 남자아이 1명만 제외하고 수일간 수백 명을 집단학살하고 유기한 지역이기도 하다. 



▲ 사진=좁은 방공호에 무릎이 굽혀진 채로 매장된 유해



【좁은 방공호 따라 빽빽한 L자 형태 유해 드러나…탄피와 신발 등 유품도 다수 발굴돼】

이번 유해발굴에선, 최소 40구 유해가 확인됐다. 이들은 대부분 건장한 남성으로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것으로 추정됐다. 유해(유골)는 온전한 형태로 발굴됐고 아산 부역혐의자로 추정되고 있다. 


유해는 폭 3미터, 길이 14미터의 방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드러나 방공호에서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보인다. 유해 대부분은 무릎이 구부러지고 앉은 자세인 L자 형태를 보이고 있어 학살당한 후 좁은 방공호에 바로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머리 위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 있었고 손목에는 군용전화선인 삐삐선이 감긴 채 발견됐다. 다른 유해들은 집단으로 손목뼈에 삐삐선이 감긴 상태로 발견되기도 했다.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학살 도구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A1 소총 탄피 57개와 소총탄두 3개, 카빈 탄피 15개,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인 99식 소총 탄피 등이 다량 발굴됐다. 유품으로는 단추 다수와 벨트 9개, 신발 39개, 삐삐선 등이 다량 발굴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해 5월 아산시와 아산유족회가 이곳에서 진행한 시굴조사 결과, 유해 일부와 탄피가 확인되면서 발굴 가능지역으로 선정하고, 유해발굴을 진행해 왔다.


이번에 발굴된 유해들은 세척 등을 통해 4월 중순까지 수습 작업을 하게 된다. 이어 인근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산96-4)에서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을 계속하게 된다.



▲ 사진=좁은 방공호를 따라 빼곡하게 매장된 유해들



【아산 부역혐의 사건, 뚜렷한 혐의나 기준없이 무차별적인 살해…대부분이 가족 희생】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5월,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을 1950년 9월에서 11월 사이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및 향토방위대, 태극동맹)가 지역주민들을 인민군 점령 당시 부역혐의로 몰아 성재산 방공호와 수철리 금광굴, 염치리, 대동리 일대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 희생자 77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참고인 진술에 따라 희생자를 800여 명으로 추정했다. 배방면 지역은 9․28수복 시기 최소 200여 명, 1․4후퇴 시기 300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희생자들은 가족 단위로 살해돼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부역혐의 사건의 특성상 가해자와 피해자 자손들이 공동체 내에 어울려 사는 경우가 많아 유해발굴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부역혐의 사건 유해발굴이 상당수 실시됐지만, 국가기관이 아닌 지방자치단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주로 발굴에 나섰다. 2018년 아산시가 자체 진행한 유해발굴 결과 208구의 유해를 수습하기도 했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실효성 있는 유해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발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근거로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삐삐선이 감겨있는 채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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